광산구 산월동 월봉마을 안산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20리에 있다. 북구 용두동 거진마을에 살던 최희순이 건립했고 현와 고광선의 상량문 및 후석 오준선의 기문, 화석 송조헌의 시가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이었다. 최희순은 이렇게 정자를 노래했다. 높은 곳에 임리정이 그지없이
북구 효령동 산102 효령동 종방마을 입구 도로변을 따라 향리 송은松隱 기정륜奇梃崙(1663~1740)이 학문을 가르치던 우산정사가 있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30리에 있다. 이 정사는 뒷편에 존성재라는 별도의 재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자로 여겨진다. 이곳은 강학이나 종친 모임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광산구 본량동 서로 180-68 해발349m의 용진산 남쪽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한말의 대학자이며 우국지사이기도 한 후석 오준선(1851∼1931)이 국난과 세상의 티끌을 피해 숨어살면서 후진을 가르친 곳이다. 1985년 광주시 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원래 용진사(湧珍寺 상원사)가 자리 잡았던 절
북구 금곡동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동쪽 30리 금곡마을에 있다. 원래 광주군(光州郡) 석저면(石底面)에 속한 지역이다. 석곡면 금곡리는 북구 금곡동과 장운동이다. 계류가 흐르는 곳에 탐진최씨 석초(石樵) 최달석(崔達錫)이 와송정을 세웠으나 지금은 없다있는 소나무 아래에 지었다 하여 그 이름을 와송이라 했다
광산구 산막동 (어등산 북쪽) 양암洋巖 최형崔衡(1663~ ?)이 지냈던 곳으로 광산구 어등산의 북쪽 황룡강 위에 있었던 정자이다. 조선지지자료(1910)에는 광산구 산막동이라 했다.호남인물지(湖南人物志)에는 최형(崔衡)의 자는 평숙(平叔)이요 호는 양암(羊岩)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그는 우암 송시
북구 생룡동 (죽취산) 야옹(野翁) 범현식(范瀅植 (1862~1923)이 1890년 쯤에 그의 강학소 겸 처소로 세웠다는 야옹정이 있었다. 그는 선묘 가까운 곳에 또 죽취정竹翠亭을 지어 선조를 추모하며 강학소로 사용했다. 그는 범윤숙의 아들로 송사 기우만을 찾아 배웠다.심석재 송병순의 아들 지재 송철헌, 후석 오준선
북구 양산동 75-7 삼호정은 효자 정윤길정려, 효자 정재요 열부 밀성박씨정려, 만석재晩石齋 등이 있는 도로가에 있다. 굳게 닫힌 철문과 2m 높이의 담이 거대하게 서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서구 화정동 화담사에서 모시고 있는 문절공 정수충이 처음 지었던 것을 퇴락 후 그 터에 후손 석포石圃 정병현
광산구 동호동 석문산석문동천石門洞天의 깊은 곳에 빙설당氷雪堂이 있다. 석문산石門山은 마치 성처럼 생겨서 전해산全海山(1879~1910) 의병부대 등이 자주 주둔하며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이다. 석문산은 나주오씨의 선산으로 나주오씨의 제각인 빙설당이다. 후석 오준선의 8대조로 병조좌랑을 지낸 석문공(石門
북구 하백로29번길 24 (매곡동)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10리 거리에 김기현이 건립하였다. 후석 오준선의 기문이 있다. 이 기문에 백암은 서석산 북쪽의 연화봉 아래 있다고 하였다. 김기현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화순 동복에 거주한 농재 김곤변의 8세손 김윤겸金潤謙의 아들이다김기현이 작고한
광산구 본량본촌길 29(동호동 419) 만취정은 청송심씨 동족마을인 동호동 남동마을 입구에 있다. 2002년 광주시 문화재자료 26호이다. 남동마을 입구에는 만취정, 남동사, 동호사 등이 마을 앞 도로와 나란히 배열하여 지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만취정은 정남향을 바라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만취
광주시 광산구 평동 묵헌默軒 이중권李重權(1869~1932)이 학문을 강구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지어 지냈던 곳이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당시에는 전남 나주 평동면平洞面에 있었으며 평동면은 1949년에 삼도면과 본량면, 광산군으로 이속시키고,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변했다.이중권의 자는 경구敬球, 호는 묵헌黙軒
광산구 수완동 (통머리마을앞) 농은정은 통머리마을의 부농으로 유림사업에 종사한 농은膿隱 이근태李根泰에 의해 지어진 매우 아름다운 정자였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대신 그 자리에 오백년 된 왕버들나무(문화재자료24호) 옆에 정자를 세워 수완경로당 옆에 수완정이라는 마을 모정이 남아 있다.정자
광산구 본량동 산3-2 (용진정사 부근) 광산구의 용진정사湧珍精舍는 후석 오준선이 1917년에 지어 국난과 속세를 떠나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졌을 용진사湧珍寺에 극복루克復樓가 있었다. 용진사는 북쪽편에서 가학정을 오르는 출발지에 암자처럼 자리하고 있었으나 사라지고 없다.용진사가 고려
남구 주월동광주읍지와 조선환여승람에 이 정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남구 주월동에 가헌稼軒 김판석金判錫이 창건했고 후석 오준선의 찬기가 있다[在州西 珠月里 金判錫所搆 有原韻 後石 吳駿善 撰記]고 하였다.김판석은 참봉, 도정 등의 벼슬에 재임했다고 하나 실직이 아닌 수직(추천)을 받은 명예직으로 보인다. 가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광산구 도림하길 33) 마을 안에 있는 도림사는 1934년 노사 기정진,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세운 사우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위의 기둥이나 단청 등은 고풍스럽게 느껴지지만 기단은 콘크리트로 쌓아 축조된 1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420, 남동마을심원표(沈遠杓) 아들 심종대(沈鍾大) 손자 심한구(沈翰求) 3대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우로 1946년 창건했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평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주변에는 풍광을 더해주는 정원수가 심어져 있고 노목이 우거져 한적한 공간을 꾸며주고 있
광주시 광산구 송정공원로 8-13, 송정공원李起巽將軍義積碑建立事實記 李起巽, 1877~1957현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 109번지 옛 주소 : 전남 광산군 본량면 북산리 110 사적지 : 한말 의병장 이기손의 생가터 이기손은 오준선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고 국운이 쇄하자 구국운동에 나섰다.1907년 황제 폐위 및